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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서평] 지대넓얕 제로 마지막편(4) - 나와 세상에 대한 사유 : 어린시절의 고민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는 어릴 때 엄청난 애늙은이로, 이런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나는 왜 저 친구가 아니고 나지? 나는 왜 태어났지? 나는 왜 우리 엄마 아빠한테서 태어났지? 내 딴에는 제법 진지하고 심각하게 생각했다. 글로 적어보기엔 막막하고 왠지 부끄러워서 남기진 않았는데, 대충 의식의 흐름으로라도 일기에 적어봤다면 제법 재미있었을 것 같다.

 

10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선 이런 생각이 더욱 깊어져갔다. 아빠는 어디에 간 건지, 다시 볼 수 있는 건지, 왜 하필 우리 아빠인 건지 매일 밤 생각했다. 우리 집은 천주교 집안이었는데, 그전까지는 딱히 성당에 데려가지 않았던 엄마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후 친구 한 명을 붙여주고 성당에 보냈다. 성당에선 하느님이 7일 동안 세상을 만든 이야기, 가르침을 전하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이 사흘 만에 부활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성당의 사람들은 기도하고 성경 구절을 소리 내어 읽고 성가를 불렀다.

나는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 사람들은 정말 이 이야기를 믿는 걸까? 말도 안되는 옛날이야기를? 믿지 않는다면 이런 행위를 하는 이유가 따로 있는 걸까? 교리 시간에 직접적으로 질문도 했다. 왜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는데요? 하느님이 왜 세상을 만들었는데요? 저희가 왜 믿어야 하는데요? (어렸기에 겁이 없었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답은 얻지 못했다. 개중에서도 보다 종교에 심취해 타인에게도 자신의 믿음을 강요하는 사람들은 정말! 알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을 이해해보려고 지극히 노력했지만 결국 이해는 하지 못했다. 의문과 의심만 가득 담은 채로 뜨문뜨문 다니다가, 엄마에게 성당을 다니고 싶지 않은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한 뒤 발길을 끊어버렸다. 

 

그 뒤론 학교생활을 충실히 하며 그때의 고민들도 잠시 잊고 살았지만, 고등학생이 되어 '윤리와 사상'을 접하곤 다시 사유에 빠졌다. 내가 접했던 건 천주교 뿐이었지만 내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사상, 종교가 있었다. 학교 공부를 넘어 다양한 철학, 종교 도서들을 읽고 내가 내린 결론은 그것이었다. '종교와 사상은 결국 인간의 내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외부에 신이나 거대 사상이 있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결국 모든 것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대학입시가 가까워지면서 모두가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였고, 종교 관련학과에 가고자 하는 친구들이나 교회를 다니면서 본인의 신념을 다지는 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초등학생 시절 억지로 성당에 갔었던 억하심정을 발휘하여.. 종교를 믿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다소 다투기도 했다. 그냥 너는 이렇구나, 나는 이래. 하면 됐을 텐데. 나 혼자 잘났다는 못난 심보가 있었던 것 같다.

 

대학에 들어가서 학과공부, 아르바이트, 취업준비로 바쁜 시간을 보냈지만, 앞으로의 내 인생에 대해 고민할 때면 철학은 늘 내 곁에 있었다. 그래서 난 어떤 자세와 신념으로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를 알아야 돈벌이나 자기 계발에 힘을 쏟을 것 아닌가. 모두가 먹고사는 일에 시달리면서 당장의 돈벌이가 안 되는 학과들은 점점 인기가 줄고 폐쇄되기도 하는 현실이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먹고사는 일에 도움 안 되는 학문을 좋아하고 이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양한 미디어 매체가 생기면서 현대인은 더 바빠지고 말초적인 욕구에 빠지기 쉬워졌지만, 이점도 많다. 어렵다면 한없이 어려운 책 외에도 다양한 곳에서 철학을 접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내가 가장 푹 빠졌던 콘텐츠가 두가지 있다. 유튜브의 '1분과학' 채널과 팟캐스트 '지대넓얕'이다. 

 

'1분과학'채널은 말 그대로 과학을 말하는 채널이지만, 과학과 철학은 거슬러 올라가면 매우 근접한 학문. 과학을 말하다 보면 자연스레 철학까지 말할 수밖에 없다. 다중우주를 말하면서는 인간이 우주에 비해선 정말 작고 초라한 존재이지만, 결국 나 자신도 우주라는 것을 , AI가 점점 발달하는 세상에서 인류는 어떤 존재가 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인류의 시작과 함께 종교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아직 낯설어 상상하기 어렵거나 민감한 주제들을 쉽지만 정확하게, 사유할 수 있는 콘텐츠를 보여주기 때문에 몇년 동안 자주자주 찾는 채널 중 하나이다. 과학이 철학과 밀접하다고 들어는 봤으나 어떤 관계인지는 잘 알지 못했던 나에게 사유의 폭을 더 넓혀주었다. 

 

팟캐스트 '지대넓얕'은 대학교 통학할 때, 회사 출퇴근할 때, 집안일할 때 bgm처럼 틀어놓았다. 사실 틀어놓고 졸거나 딴짓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굉장히 여러 번 정주행 했음에도 늘 새롭다 하하. 듣다 보니 갑자기 채사장이랑 독실이랑 싸워서 음? 갑자기 왜 싸우지? 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하튼.. 심심하면 일단 틀어놓았던 팟캐스트였는데, 철학/과학/종교/역사 등등 정말 넓고 얕게, 하지만 사유할 거리는 던져주는 멋진 콘텐츠이다. 다양한 관점, 사상을 가지고 있는 4명의 인물이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흥미로웠다. 다양한 주제의 지식뿐만 아니라, 그걸 바라보는 사람의 사유까지도 알 수 있어 듣는 이도 더욱 몰입하고 고민해볼 수 있는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론 김도인과 나의 싱크로율이 좋아서 김도인이 하는 말에 나 혼자 손뼉을 치며 공감할 때도 많았다. 

 

 

이렇게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며 나의 지식과 사유는 깊어져갔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래서 넌 무엇을 믿고 옹호하지?'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아직 뚜렷하게 이야기할 수 없다. 일단 무신론 혹은 범신론을 믿는 것 같긴 하지만 왠지 초월적인 존재가 없진 않을 것 같고, 재정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돈 걱정은 늘 하지만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벌고 싶진 않고 그냥 소소하게 살다 가고 싶다. 사후 세계가 있을런지, 있다면 어떨런지도 그냥 모르겠다. 그렇다고 불가지론은 아닌 것 같고, 이렇지 않을까? 근데 모르지~ 아니아니 그래도... 이런 생각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주로 말하는 '일원론'에 마음이 가긴 한다. 어린 시절 나는 왜 나인지, 왜 나로 태어났는지에 대한 고민이 일원론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결국 우주는 나이고 나는 우주이다. 나의 존재는 초라하지 않지만 자만해서도 안된다. 

 

이 책이 처음 나오고 읽었을 때와,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지금 읽었을 때의 느낌은 현저히 다르다. 내가 그동안 조금이나마 성장하고 다양한 경험을 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 내 존재에 대한 기본적인 고민을 하던 나는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이나마 성장하고 신념이 생겨나는 것 같다. 하지만 때로는 선입견과 편견을 내려놓는 유연함이 필요할 터. 앞으로도 낯설어도 다양한 경험, 다양한 지식을 접하며 나의 하루하루를 보내볼 것이다.